머릿말
2007년 6월 경에 한 번 구입했고, 2009년에 가을에 판매후 지난 여름에 다시 구입했던 이력을 가진 CDP, DCD-2000AE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DCD-2000AE의 일본 명은 DCD-1650AE로 이 DCD-1650 시리즈는 데논이 1990년부터 생산해온 데논을 대표하는 CDP시리즈입니다.
1990년 DCD-1650G가 생산된 이후 6번의 모델체인지를 해서 나온 모델이 DCD-1650AE이며, 현재는 한 번 더 모델체인지를 한 DCD-1650SE라는 모델로 발전했습니다.
고풍스런 디자인의 DCD-1650G 하지만 실제 설계 사상은 최신기기인 DCD-1650SE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DCD-1650SE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지금은 1650AE,그러니까 2000AE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데논 CDP의 소리 성향
DCD-2000AE의 가장 큰 장점은 '익숙하고 편안한 소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날카로운 고음역도 없고, 힘이 빵빵 넘쳐흐르는 저역도 없고, 아주 디테일하고 세밀한 고분해능의 사운드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정 급 이상의 디테일을 갖고, 자신의 성깔을 부릴 때는 부릴 줄 알면서도 기본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냅니다.
다만 이런 익숙한 소리가 오히려 이 브랜드의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류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브랜드의 가장 큰 단점은 'First Impession', 즉 첫 인상이 옅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큰 돈을 주고 업그레이드한 오디오 기기가 첫 인상이 강렬하지 못하면,
아무래도 새로운 기기를 구입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적어지고 그것이 단점으로 보일 수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기의 단점이라기보단 오히려 소리의 성향이라고 봐야할 것이고, 특징이라고 봐야합니다. 하지만 DCD-2000AE의 이런 성향은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비슷한 가격대의 마란츠의 SA-15S1이나 소니의 XA9000에 비해서 자칫 나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성향은 고가인 DCD-SA1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는 한국에서 동급인 50만엔(신품가 500만원)대의 다른 구미의 'CDP'들과의 싸움에서 참패를 당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사실 요즘은 좀 더 기기값이 올랐지만(환율 탓도 크지만, 매해 10~20%씩 오디오기기들의 신품가가 오르고 있습니다.)
DCD-SA1이 발매될 당시엔 저 500만원대가 100만원 초반대와 더불어 가장 접전을 벌이던 가격대였는데, 이 가격대에서의 국내에서의 패배가 결국 데논 브랜드 CDP 전체의 인상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데논의 이 익숙하고 편안한 소리는 계속해서 음악'그 자체'를 듣게 만들고, 특별하게 기기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고 들을 수 있으므로 기간적으로도, 시간 적으로도 오래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이 것은 비교적 바꿈질을 자주하는 제가 이 CDP만큼은 2007년 구입한 이래로 제법 긴 시간동안 사용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데논 특유의 소리를 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탄탄한 저역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데논이 디지털 기기를 만드는데 있어서 크게 강조하는 것은 제진설계와 디지털/아날로그의 전원분리입니다. 즉 디지털 플레이어의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탄탄한 기본기는 곧 탄탄한 저역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마무리된 저역에 중역, 고역을 올려놓는 형식으로 소리를 꾸미니, 전체적으로 소리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이 성향은 DCD-2000AE의 상위기종인 DCD-SA1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기본적인 소리의 성향은 같되, 가격대(50만엔)에 걸맞는 좀 더 고품위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것이 DCD-SA1의 특징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DCD-SA1의 음질 성향을 2000AE의 가격에 맞게 다시 다듬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지요.
또한 상위 기종의 핵심기술은 대부분 2000AE에도 잘 반영이 된 느낌입니다.
데논 중상급 CDP의 특징은 크게 아래 세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1. 데논에서 직접 제작, 생산한 메커니즘
2. 전원트랜스부터 디지털/아날로그 회로의 완전 분리
3. AL24 알고리즘등을 이용한 CD의 음질 보완
이 세 가지 덕분에 상당히 정갈하고 고운 소리를 들려 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데논 CDP는 메커니즘을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생기는 이점이 많은데, 일단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트레이가 열릴 때의 느낌입니다. SACD 메커니즘을 직접 생산하지 못하는 많은 업체들이 부품 가격을 절감하기 위해서 일본의 저가 유니버설플레이어의 메커니즘을 구입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가격에 비해서 참 '촐싹대는' 움직임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1000만원짜리 SACDP의 트레이가 '덜컹덜컹' 거리면서 열린다면 'OPEN'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기분이 나빠질 수 있죠.
실제로 오디오 기기를 구입해서 사용해보면, 의외로 '촉감'이나 '시각적인 즐거움'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데, 오디오기기는 단순히 소리를 내는 기기만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는 행위와 다른 기기들과의 일체감도 의외로 중요하게 와 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공한 오디오 브랜드는 디자인 적인 부분뿐 아니라 기기의 만듦새가 튼튼한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AL24 알고리즘은 사실 기기 부품만 놓고 보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16bit DSP칩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간 프로그래밍 데이터가 결국 AL24 알고리즘인 것이지요. 하지만 이 대단하지 않아보일지도 모르는 것을 대단하게 만드는 것이 결국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하이파이업체들 중에서 직접 DSP용으로 쓸 반도체를 생산해서 거기에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넣을 수 있는 회사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흔히들 말하는 '이 1000만원짜리 제품은 실제로는 1만원짜리 반도체를 사용합니다.' 같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X드X트같은 적당히 '오려붙인' 껍데기가 제품 가격의 95%씩 하는 몇몇 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하이파이업체는 그 가격을 받을만한 가치를 가진 기기를 만듭니다. 특히 일본의 기기들은 그런 물량투입 부분에서 절대 인색하지 않죠.
DENON AL24라고 쓰여있는 반도체도 실은 데논에서 직접 생산한 부품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좀 딴 곳으로 샌 것도 같은데, 이 DCD-2000AE는 데논의 철학인 '단순+정직'이 아주 잘 살아있는 건실한 소리를 들려주는 훌륭한 기기입니다.
DCD-2000의 소리 성향에서 오는 단점
다만 이 DCD-2000AE CDP에 몇가지 단점이 있는데,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음을 내고 끊는 것에 대한 순발력이 느림
2. 자칫 매칭에 실패할 경우 저음이 부스트 되는 경우가 생김
3. 음을 모나지 않게 만드는 착색이 존재함
음을 내고 끊는 것에 대한 순발력이 느리다는 것은, 사실 하이파이 오디오에겐 꽤나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하이파이 오디오에서 중시되는 것이 '원음을 재생'이라는 것인데, 자칫 만들어진 음이 나오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특히 이 부분은 3번과 더불어서 저처럼 '게임음악=전자음악'을 많이 드는 사람들에게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기계음을 자연음처럼 연주하려고 노력한달까요. 기계음에 여러가지 요소가 더해져서 좀 더 자연스러운 음이 되면 그것도 좋지만, 그 음 자체를 듣고 싶을 때가 더 많은데,(사실 원음과 다른 음은 쉽게 질리게 됩니다.) 그런 부분에서 확실히 단점이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CD의 단점인 44khz/16bit라는 CD 특유의 단점을 없애기 위해서 만들어진 AL24의 특징이 오히려 이럴 때는 단점으로 느껴지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부분은 일본CDP들 전체의 문제점인데, 그나마 이런 문제가 적은 에소테릭은 오히려 너무 심심해서 문제가 많죠. '기기를 만드는 재주는 좋지만 소리를 만드는 재주는 없다'라고 미국의 스테레오파일에서 꼬집을만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가장 원음 재생에 가까운 것이 데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마란츠가 이 부분이 제일 심각했는데, 최근(그러니까 D&M홀딩스로 합병이 된 2007년경)에 나온 기기들은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음이 부스트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는 데논의 소리를 만드는 특징에서 기인한 문제인데, 데논은 저음을 튼실하게 만들고 그 위에 중/고음을 쌓다보니, 중가기기인 DCD-2000AE에서는 차마 고음의 디테일에는 신경쓰지 못한 듯 싶습니다.(실제로 DCD-SA1과 1:1 비교 청취를 해봤을 때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점이 이 부분입니다.) 이 저음이 부스트 되는 현상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CDP 아래에 스파이크를 설치하는 것입니다. CDP의 다리 아래에 스파이크를 부착하여 스파이크 슈즈를 쓰지 않은 상태로 오디오보드 위에 직접 설치하는 방법으로 하면, 제법 괜찮아 집니다. 이 방법은 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방법인데, 주로 기기가 무거울 수록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와디아를 위시한 많은 회사에서 쓰고 있는 방법이 진동을 한 점(스파이크)으로 응축해서 바닥으로 흘려보내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저는 이렇게 스파이크를 그대로 오디오 보드에 박아버리는 형식으로 오디오기기를 사용하는데,
고역이 맑아지고 저음의 부밍이 적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두번째 방법은 케이블을 은선으로 교체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이 CDP를 쓰던 시절에 주로 썼던 케이블이 '크리스탈 케이블'에서 나온 피콜로란 제품과 실텍에서 나온 ST-18선제와 WBT단자를 이용한 벌크선이었는데, 둘 다 제법 괜찮은 효과를 봤었죠.
총평
제법 긴 시간동안 사용하면서, 거의 레퍼런스처럼 사용한 이 CDP랑 또 잠시 이별을 할 때가 온 것 같아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소리가 그리워지면 다시 손에 넣겠지요. 환율이 낮을 때 들어온 많은 오디오 기기들 처럼 이 기기도 중고가격을 생각하면 가격대 성능비로는 거의 최상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하이파이=마란츠, 데논=AV라는 인식 때문에 데논 기기들의 중고가가 싼 편이고 국내에서 푸대접을 받지만, 이 편안하고 느긋한 음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국내에도 아주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데논도 일본회사답게 매우 진지한 브랜드거든요.
누군가가 저에게 중고가로 50만원대의 CDP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전 주저없이 이 기기를 선택하겠네요.
제 마음속의 베스트바이입니다.
DCD-2000AE와 함께 했던 기기들
AV리시버
Inkel R963
Denon AVR-2808
하이파이 앰프
AprilMusic Stello P200+M200
Denon PMA-2000AE
Krell KAV-400xi
Creek 4330
스피커
B&W DM603S3
B&W 노틸러스804
B&W 시그너쳐805
B&W CM1
B&W CM5
Linn Akurate212
비교청취했던 CDP or 유니버설 플레이어
Sony PS3
Marantz SA-11S2
Denon DCD-SA1
Denon DCD-2010SE(1650SE)